한일 관계 의 과 거청산문제 - 한일관계의 과거청산 문제 레포트
한일관계의 과거청산 문제
1. 일본의 내셔널리즘
독일은 나치하의 과거를 기억하고 사죄의 자세와 실천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면서 세계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압박을 거부하며 그것에 의한 희생자들에게 따듯한 손길을 펴고자 호소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전후 50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도 그들에게 그런 자세와 실천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일본의 지난날의 잔학한 한국통치나 아시아지배, 전후의 역사에 미루어서 일본이란 어떤 나라이며 그 내셔널리즘은 무엇인가가 제기된다.
2. ‘과거청산’과는 먼 한일협정
1965년에 체결된 한일협정은 정말로 과거청산 위에 선 한일관계의 출발을 의미했어야 했다. 그러나 과거청산을 거부하려는 일본의 자세가 한일협정 속에 도처에서 나타나 있다. 이 협정은 오늘도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으며 언젠가는 개정되어야 할 조약이다. 일본은 마땅히 과거배상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나 이 기본조약의 제2조의 내용 중 “이미 무효임을”의 해석을 1945년 이후 또는 샌프란시스코 조약 이후라고 함으로써 한국에 대해서 가혹한 식민지 지배를 했던 과거사를 합법화하고 그것에 대한 청산을 법적으로 거부한 셈이다.
한국국민이 생각한 배상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대가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한국은 매우 축소된 내용의 (제2차대전 중의 인명피해의 보상을 제외한) 재산청구를 요구하였으나 일본은 “한몫 돈을 집어주는 방식으로 결정될 것이 아니다”라며 과거청산은커녕 지난날의 자세를 유지하며 일본의 국가이익을 최대한 취하려하였다. 그러나 내외의 압력으로 1965년 한국을 방문한 시나 에쓰사부로 외상은 “과거의 불행한 기간은 유감이며, 양국간에 항구적인 선린우호관계수립.....”을 담고 있는 ‘공식사죄 1호’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강요된 사과였고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한일협정 속에도 패전 전의 내셔널리즘이 그대로 이어져서 흐르고 있으며 일본이 과거를 청산한다는 과제는 프랑스와 독일과의 사이와는 다르다.
3. ‘망언’과 ‘과거청산’
일본정부는 철저하게 일본 군국주의의 죄악을 시인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을미사변 이래로 이어진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까?
일본 내셔널리즘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의식 저류에 흐르고 있다. 그러므로 식민지 지배의 과거청산이란 그들의 지난날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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